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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라의 피곤》은 작가 배수아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소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감지한 ‘모방’과 ‘본받음’의 차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형식화된 규범과 장르 그리고 그것이 몸에 남기는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리스펙토르의 소설 『장미를 본받아』와 로런 벌렌트(Lauren Berlant)의 정동 이론을 참조하며, 일상과 피로, 매혹 등이 어떻게 불평(complaint)이라는 정동적 수행과 연결될 수 있는지, 어떻게 여성의 자기 서술과 관계 맺기의 방식 속에서 형성되는지를 탐색하려 합니다.
김연진의 <댄스 댄스 댄스>(2026)는 신부의 존재 이전과 이후에 남아 있는 결혼의 이미지들을 제시하는 <신부 이후>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신부는 한 사람이라기보다 구조이자 역할이며 하나의 약속에 가깝다. 작품 속 신부는 허구의 휴양지 ‘마리솔리테르(marrisolitaire)’로 떠나고, 신부가 착용하는 오브제들은 자신을 붙잡아 줄 몸 없이 허공을 떠돈다. 그들은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무한히 퍼져나가는 춤을 춘다. <댄스 댄스 댄스>를 이루는 유리구두는 눈앞을 강타하듯 다가온다. 그러나 조형물들이 거대하고 과시적임에도 그들은 늘 반쯤 증발한 채로, 다만 계획과 약속으로 포화되어 있다.
윤소린은 “여성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공유하고 있는 판타지”를 생각한다. 이 판타지는 정해진 절차를 따르며 낱낱이 분해되거나 (<마른 꽃을 처리하는 방법>), 섬광효과로 인한 눈의 피로 속에서 실제 경험과 경계가 흐려진다(<로맨틱 이미지>). 이번 전시에서 <로맨틱 이미지>는 10여 년의 시차를 거쳐 재설치된다. 이때 기존 작업의 맥락은 대체 텍스트, 유형학적 드로잉 등과 새롭게 조합되며 일부 열화되고, 그 자리에는 이 ‘로맨틱 이미지’들이 어째서 떨칠 수 없는 매혹이며 피로였는지를 바라보기 위한 새로운 눈들이 등장한다. “다른 삶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나를 찾아보려는 응시”의 방법은 이번 작품 안에서 과거의 자신을 재방문하는 일과 만난다. 전시를 준비하며 윤소린에게 제안된 여러 책 중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워크룸프레스, 2019) 가 있었다. 윤소린은 소설 3장에 등장하는 ‘나’라는 단어를 따라가며 그 위에 검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단어의 위치를 짐작하고 더듬는 행위 속에서 ‘나’는 강조되었고 동시에 지워졌다.
최고래는 패브릭과 설치를 중심으로 ‘두 여자’ 간의 관계성을 살펴보는 <두 여자> 연작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에서 최고래는 그간 ‘두 여자’가 주요하게 등장해온 뜨개(crochet)의 매체적 특징을 다시 살피며 ‘두 여자’에 변주를 준다. 뜨개는 실의 물성과 반복적인 수작업을 바탕으로 부드러운 질감과 장식적 형태를 만들어낸다. 최고래는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뜨개의 속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부적 이미지, 애인의 사진에서부터 백합, 카라비너, 가위 등 대중 매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해온 레즈비언 상징물을 공예 장식품 속 무늬처럼 보이게 한다. 이들은 커튼처럼 드리워지거나, 손잡이를 덧씌우거나, 곡선 벽 앞에 설치되며 “일상적이고 눈에 거슬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상태”로 공간에 스며들어 있다. 전시를 준비하며 최고래에게 제안된 책 『페른베』 (시간의 흐름, 2025)와 『별의 시간』 (을유문화사, 2023)은 작품의 제목으로, 또 공간 안에서 작품의 배치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인용되며 작은 속삭임처럼 공간에 함께 설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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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라의 피곤》의 리플렛은 종이점쟁이(origami fortune teller) 혹은 ’동서남북 접기‘ 형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중심을 향해 모이는 듯하다가도 이내 사방으로 펼쳐지는 구조를 지닙니다. 종이를 오므렸다 펼치기를 반복하면 전시를 이루는 네 개의 문장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고, 이를 한 번 더 펼치면 전시가 탐구한 관계와 참여 작품에 관한 설명이 접힌 자국을 토대로 갈라지며 나타납니다. 감추는 듯하면서 펼쳐지고, 모이는 듯하면서 흩어지는 이 종이 접기의 움직임은 관객의 몸을 전시에 참여시키는 장치이자, 《라우라의 피곤》이 탐구하는 공동(collective)과 친밀성(intimacy)의 형식입니다.
2026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지원 선정 프로젝트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디자인 : 김다빈
-촬영 : 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