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버린 것이 다시 손에 잡히기까지>
기획 오지형
작가 노지영, 최고래
2025년 8월 6일(수) – 8월 24일(일)
SPACE INK
서울시 동대문구 왕산로 47길 54 지하1층
사진 스튜디오 유물
포스터 손석민
<흘러버린 것이 다시 손에 잡히기까지>
기획 오지형
작가 노지영, 최고래
2025년 8월 6일(수) – 8월 24일(일)
SPACE INK
서울시 동대문구 왕산로 47길 54 지하1층
사진 스튜디오 유물
포스터 손석민
노지영,최고래 작가의 작업에 대한 대화는 2024년부터 지속적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이뤄져왔다. 긴 시간 그들과 대화하며 비슷한 재료를 사용함에도 두 작가의 작업 방향성이 반대를 향한다는 점은 그들이 각자의 견고한 위치에서 서로에서 조언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노지영과 최고래 작가 모두 천, 두툼한 실, 나무 등의 비슷한 재료를 쓰지만, 재료를 통한 관객 경험의 방향이 극명하게 다르다. 노지영 작가는 ‘촉각’을 작품 몰입을 위해 활용하여 관객이 작품을 통해 작가의 내면으로부터 바깥을 바라보게 만드는 반면 최고래 작가는 ‘촉각’을 통해 관객과 자신의 접점을 만들며 감정을 건드려 관객이 작품을 통해 바깥에서부터 작가의 내면을 향해 들어오도록 한다.
살면서 붙잡히지 않고 무수히 떠나가는 대상들 중 손으로 어느 것 하나를 잡아둘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두 작가는 전시를 준비하며 보내온 시간에서 각각의 대상을 발견했다. 본 전시는 흘러버린 것, 그러니까 잘 사라지고 유동적이며 고정할 수 없는 어떠한 대상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잡아내는 과정을 담아낸다. 누군가에게는 이 흘러버린다는 것이 사랑이란 감정에 대한 기억일 수도 혹은 자신의 삶에 대한 방향성을 묻는 질문일 수도 있다. 두 작가는 흘러버린 것, 흘린 것들을 자신만의 안전하고 안락한 공간, 어릴적 이불로 만들었던 아지트에 숨겨 관객을 초대한다. ‘흘러버렸다’는 것과 관련해 덧붙이자면, 두 작가를 포함한 동시대의 또래들이 어느때보다도 깊은 불안과 선택의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을 반영한다.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차원을 넘어, 사회 조직의 근본적인 변화 또한 작가들이 당면한 불안함을 증폭시킨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혼돈 속에서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은 작가들로 하여금 두루뭉술하게 흘러버린 것을 손으로 선명하게 잡을 수 있도록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거나, 스스로를 위한 대상을 직조하는 필연적 행위로 이끈다.
노지영 작가는 세상을 살아갈 기준을 세우기에 어려움을 겪으며 기준이 명확해 보이는 것들을 찾는다. 작가는 80년대부터 우후죽순 세워지고 있는 ‘바르게 살자’ 돌비석을 발견한다. 전재주의 시대 모두가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폭력적 사회의 산물이었던 이 돌덩어리는 한국 이곳저곳에 서있어 불량배의 팔에 적힌 ‘착하게 살자’ 문구처럼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기묘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작가는 명확해보이지만 동시대와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는 요소를 쫓는 스스로가 부끄럽다. 이 부끄러움은 작품의 재료와 설치 방식로 드러난다. 전시장의 돌비석은 스티로폼으로 깎여 무척이나 가볍다. 반으로 갈라진 돌비석에서 '바르게' 부분에는 쉬폰이 드리워지며, 위에 매달린 '우는 비석'에서 떨어지는 물은 가리려는 시도를 비웃듯 쉬폰 위로 떨어져 가린 글자를 드러낸다. 노지영은 가리고자 하지만 드러나는 글자, 고개를 들어야 볼 수 있는 사이비 종교 교리, 측면에서 보아야 보이는 허위 투자 광고처럼 자신이 찾은 기준과 현 시대 사이의 간극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숨기듯 작품들을 설치한다.
최고래 작가는 2020년도부터 지속해온 '두 여자' 연작을 발전시켜 '760일'과 '6일'로 내보인다. 화려한 색실로 제작된 신작들은 작가의 기억이 저장된 ‘외장하드’이다.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작업 안에 대상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넣어서 밀봉한 후 다시 작업을 볼 때 잊고 있던 기억을 다시 재생시킨다. 손으로 한땀한땀 뜨여진 '760일'과 '6일'은 쉽게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매체들과 다르게 기억을 묶어두는 과정이 느리고 순차적이다. 작가는 수집한 이미지를 모눈종이 형태로 치환하고 각 칸을 크로셰로 채워나가며 완성하는데, 전체 이미지를 중간 과정에서 확인할 수도 없기 때문에 더욱 신중을 기울여 차근히 작업의 과정에 임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림자를 적극 활용한 설치 방식은 작가를 온종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그리운 유령같은 기억들에 대한 감각을 형상화한다. 작가는 전시 공간으로 들어오는 두 개의 문에 각기 다른 태도의 작업을 설치하여 유령같은 기억들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