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Statement
추운 날, 목을 감싼 얇고 까슬거리는 목도리의 존재감을 느낀다. 누군가 내 생각이 나서 샀다던 실로 만든 목도리는 목도리를 위한 실이 아니다. 거칠고 얄팍하여 목에 포근하게 감기지 않는다. 헐겁게 두르거나 안쪽에 목티를 받쳐야 겨우 제 역할을 한다. 덜 따뜻하고 더 까슬거리지만, 이 목도리는 몸을 덮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채우기 위해 두른 것이다.
그 마음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거창한 사랑이 아니라, 나에게서 시작되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끝나는 사랑이다. 사랑이 움직이는 동안 그것은 많은 것을 흘리며 흔적을 남긴다.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를 흘리듯, 끝난 관계는 미련과 기억, 허함과 아쉬움을 부스러기처럼 남기고, 그 흔적은 유령처럼 나를 따라다닌다. 피할 수 없다면 나는 그것을 눈앞에 두고 직면한다. 유령 같은 순간의 감정을 붙잡아 만지고 느낄 수 있는 형태로 옮겨 고착화한다. 사랑의 흔적이 언제 변하고 사라질지 모르기에, 그 선명한 찰나를 기록하고, 그로 인해 변하는 나를 작업에 투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은 담담해지고, 나는 더 솔직해진다.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과 촉각의 언어로 번역하는 행위는 내게 주술과 같다. 무당이 신에게 힘을 구하듯, 나는 나의 언어로 유령 같은 사랑의 흔적을 대면하고 부각한다. 그 결과물은 내가 쓴 부적이 되고, 마음을 담는 그 행위 자체가 곧 작업이 된다.
요즘 나의 작업은 ‘칸을 나누고 하나씩 채워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수집한 이미지를 단순화해 모눈칸으로 옮기고, 크로셰로 하나 하나 메워간다. 비워짐과 채워짐으로 이루어진 격자 무늬는 양극단의 성격을 지니며 무엇을 보여주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벽과 작업 사이에 드리운 회색 그림자는 이미지를 드러낸다. 빛의 양과 거리감에 따라 그림자의 선명도는 끊임없이 달라진다. 그림자는 일시적이면서도 거대하고, 하찮으면서도 강렬하다. 이는 사랑의 흔적과도 닮아 있다.
반복되는 수공예적 행위는 마음을 다스리고, 주술을 외우듯 이미지와 감정을 되돌아보는 의식이 된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섬세함과 거칠음, 단단함과 흐물거림은 사랑의 흔적을 주워 담는 몸의 행위다. 그렇게 지나간 관계를 애도하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감정을 느낀다. 축축하고 서늘한 공포와 따뜻한 기억이 공존하는 자리. 그 경계 위에서 나는 계속 직조한다.